LOGIN
 
세무검증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글자 확대글자 축소인쇄
 글쓴이 : 운영자
작성일 : 11-04-23 08:18 | 조회 : 6,873  
세무검증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세무검증제 논의…"그 곳에 '납세자'는 없었다"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전무-"국민 무시한 처사"
사업자 단체, "졸속 법안, 위헌소송 제기할 것"

세무검증제의 문제점은 제도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제도 도입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당장 이번 임시국회에서 며칠사이에 검증대상자가 현금수입업종에서 모든 업종으로 확대되고,
검증대상자의 숫자도 두 배 이상 급증하는 것으로 재설계됐지만,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도 납세자들에게 제대로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기획재정위 통과를 기점으로 언론을 통해 전 업종을 대상으로
세무검증제도가 시행된다고 보도되기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모르는 납세자들이 태반이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사천리'

= 기획재정부는 세무검증제도 도입을 처음 추진했던 지난해 8월9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무검증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공청회는 정부 용역으로 세무검증제도 도입방안을 마련한 한국조세연구원 주최로 진행됐고,
세무사회는 물론 의사협회, 변호사협회, 납세자대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해 찬반논쟁을 펼쳤다

물론 이날 공청회에서도 지금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와 큰 차이 없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정부의 제도 도입방안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용역을 주고, 조세연구원이 마련한 원안 그대로 국회에 제출됐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임시국회의 논의과정이다.

정부는 2010년 한차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사력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세무검증 대상을 '일부 현금수입업종'에서 '모든 업종'으로
대폭 확대하는 수정안을 제시, 지난 4일 비공개로 진행된 조세소위원회에서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제도의 영향을 받게될 납세자의 범위가 3배 가까이 증가했음에도 세무검증제는
그 내용이 국회 밖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첫 번 째이자 가장 중요한 입법관문을 넘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오전에 조세소위원회를 열어 세무검증제를 전격 의결하고,
오후에는 전체회의를 열어 이슬람채권 비과세 법안에 대한 비공개 공청회를 열었다

당장 납세자 수 만여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안은 소리소문 없이 통과됐고,
이미 여야 정치권이 이번 국회에서 논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슬람채권과 관련해서는
뒤늦은 공청회를 연 것이다

일각에서 국회가 이슬람채권 비과세법을 정부안대로 처리해주지 못한 반대급부로 세무검증제를
정부안대로 신속하게 처리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과정을 보면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할 수 없는 면이 있다

□ 반대 많았지만 표결 없이 처리된 '세무검증제'

= 지난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세무검증제 도입법안을 임시국회 논의
 3일만에 전격 통과시키면서,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비쳐졌지만,
 사실 논의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대 의견이 표출됐다

지난 2일 처음으로 열린 조세소위원회에서는 야당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의원들도
반대의견을 쏟아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소위원회에 참석한 국회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줄곧 제도도입에 반대입장을 분명히해 왔던
민주당 이용섭, 오제세 의원 외에도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과 김광림 의원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제도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며
제도의 수정과 함께 제도도입의 정당성을 입증할 만한 각종 통계자료와 근거자료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김성곤 의원과 한나라당 유일호 의원이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한 반면,
여당간사인 한나라당 강길부 의원과 같은 당 나성린 의원 둘만 찬성의 편에 섰다

사실상 9명의 조세소위 위원 중 과반이 넘는 숫자가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세무검증제 논의는 다음날인 3일 조세소위로 다시 넘어갔다.

3일 조세소위가 '분수령'이 됐다는 후문. 정부는 이날 검증대상 업종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대신 가산세 부담을 줄이는 등의 수정안을 전격적으로 제시,
강길부 한나라당 간사를 내세워 국회의원들 설득에 나섰고
반대입장이던 일부 조세소위 위원이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

그러나 찬반 양론은 4일 열린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도 사그라 들지 않았다

민주당 이용섭, 오제세 의원 등 조세소위 때부터 제도도입에 문제를 제기한 의원은 물론이고,
자유선진당 이영애 의원, 미래희망연대 김혜성 의원 등
다른 야당의원까지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영애 의원은 "어떤 사업자가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느냐
여부를 다른 사업자가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세무당국이 해야할 일을 사인에게 위임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떤 기업이 업무집행에 있어서 적법했는지를 변호사에게 감수하도록 해서 확인서를 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이종구 의원 등 제도도입에 반대했던 여당의원들은 사정상 회의에
불참하거나 별다른 입장을 내 놓지 않고 침묵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정책적인 문제이니 만큼
정파를 떠나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각자의 소신 있는 의견을 표시할 수 있도록 표결처리하자"고 표결처리를 제안했으나

한나라당 측 의원들은 "소위에서 여야간에 합의된 사안이니 만큼 관례대로 합의처리하자"고 맞섰다

특히 한나라당 측에서는 "그동안 기획재정위에서는
표결처리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표결처리의 전례를 남기면,
앞으로 다수당인 우리 한나라당이 표로 밀어붙이는 수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한차례 정회와 여야간사간 회의를 통해 합의해서 의결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면서 세무검증제 도입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 납세자들 "위헌심판 제기하겠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세무검증제 도입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키자
다급해진 납세자들은 공동대응을 하면서 제도도입 철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그동안 세무검증제에 공식적으로 반대해 왔던
의사, 변호사 관련 협회는 물론 요식업협회, 학원연합회, 공인중개사회까지 합세해
세무검증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들은 무엇보다도 규제 정책을 도입하면서
대상이 되는 국민에게 어떤 언급이나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분노를 표출했다.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정부의 수정안을 통해 세무검증대상으로 추가된
사업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오로지 세무검증제의 실현을 위해
대상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확대해 통과시켰다. 이는 정상적인 입법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특히 "다수의 개인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법안을 충분한
논의나 연구, 신중한 의견 수렴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통과시킨 것은 분명히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법안이 졸속으로 진행될 경우
무효화를 위해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한변호사협회 정준길 대변인은
"세원투명성 강화라는 제도의 취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세금은 분명 제대로 납부해야하고,
실제로 사업용계좌 신설, 현금영수증발급 의무화 등으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며

"일부 불성실한 납세자 때문에 선의의 납세자들까지 검증비용 등을
 부당하게 부담해야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장현재 이사도 "합리적 근거도 없이
일정금액 이상의 고소득 자영업자를 소득탈루집단으로 간주하고

일률적으로 세무검증을 받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조세행정"이라며
 "세무검증제는 정부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정편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일 세무검증제 관련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며,

만약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10일 혹은
11일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관련 법안들이 최종적으로 처리될 전망이다.